[꼬레 아페르 109호] 위기의 세대들

글. 오리안 르메르, 꼬레아페르 편집장, 한불상공회의소 커뮤니케이션부 과장

한국에서 ‘희생된 세대’는 보통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박정희 독재 정권(1961~1979) 치하 아래 피땀 흘려 일하며 잿더 미가 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 세대의 사회적·심리적 안녕을 희생한 대가로 이뤄낸 급격한 성장이었다. 조세희의 풍자적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러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은 재개발 때문에 살던 곳에서 쫓겨난 한 난쟁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자신을 그저 체구가 작은 사람으로만 보며 다른 동료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유능한 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다니던 공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늘날 ‘희생된 세대’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이는 80년대 말 이후에 태어나 전 세계적으로 퍼진 쇠락의 기운 속에서 양산된 포스트모더니즘적 우울에 빠진 젊은 세대를 말한다. 전 세계에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이 개념은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확산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후 변화와 경제 상황 등 이미 암담한 현실에 보건 위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문제가 더해진 것이다. 팬데믹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바이러스가 아동 및 청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명확해졌음은 물론 점점 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11월 20일 ‘세계 어린이의 날’을 맞아 유니세프가 발표한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는 내용이다. 유엔 전문가들에 따르면 청년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건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과 일부 선진국에서도 보이고 있는 필수 서비스의 중단 그리고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가 이에 해당한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스타시옹 F (Station F)에서 지난 10월 중순 발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18~30세 프랑스인 중 87%는 코로나19 기간에 쌓인 부채를 향후 수십 년 동안 본인들이 갚아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는 본인과 지인의 건강을 꼽았다. 이어 응답자의 35%는 팬데믹 사태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25%는 국민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우려된다고 답했다.(18세 이상 성인 전체에서는 각각 29%와 18%)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층의 ‘걱정 지수’가 10점 만점 기준 2019년 4.3점에서 2020년 6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40대는 4.2점에서 5.4점, 50대 는 4.1점에서 5.1점, 60대는 4.1점에서 4.8점으로 비교적 낮은 상승폭을 보였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걱정의 주된 원인은 일자리 문제다. 2020년 11월, 한국 실업률은 4.6%로 전년 동기 대비 1.2%포인트 증가했고, 같은 시기 프랑스 실업률은 9%로, 0.6%포인트 증가했다.

 

서울 소재 IT 회사에 재직 중인 30대 여성 김아영 씨는 이러한 현실 때문에 젊은 직장인들이 불리한 근로조건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첫 직장을 찾을 때만 해도 급여는 높고 업무 부담은 적은 곳을 원했죠. 아시다시피 물질주의 세대니까요.(웃음)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어요.(중략)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포기하고 조금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도 참아내는 분위기예요”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코로나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나 동료들로부터 받는 중압감 역시 무리해서 일하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서 네 달 전 다른 부서로 옮겼어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제 개인적인 삶은 없어요. 누가 추가 근무를 시킨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붙들고 온갖 업무 연락에 답을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전부 그렇게 하니까요.” 그러면서 김아영 씨는 “희한한 건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더 많이 배우고, 회사에 더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사태는 청년들이 겪는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계층의 가치가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언택트 사회’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그 결과 ‘코로나 세대’(혹자는 ‘초연결 코로나 세대’라고도 한다)라는 개념은 젊은 세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의 관습과 열망의 변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줄리앙 에르보(Julien Herveau) 마자르 새빛회계법인 상무이사는 “‘Y세대’, ‘Z세대’와 같은 개념은 상당히 작위적으로 느껴집니다. 한국인들을 보면 연령대와 상관없이 생활 환경이 변하면서 사고방식과 기대하는 바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죠”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코로나 사태가 국민 사이에서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사회 보장 제도의 필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양국 경기 부양책의 상당 부분은 사회 보장 제도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은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과 사회수혜금의 증액에, 프랑스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의 고용 보호(76억 유로), 청년층 노동시장 진입 지원(65억 유로), 직업교육(20억 유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줄리앙 에르보 상무이사는 “심지어 보수적이기로 정평이 난 이 업계에서도, ‘워라밸'과 공정한 경영에 대한 모두의 기대가 특히 커졌다는 사실을 팬데믹 발생전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중 략) 지난해부터 우리 회계법인은 인적자원 관리 전략을 다시 세웠습니다. 감사 비시즌 기간 동안 회계사들에 대해서는 주 4일제를,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은 좋은 성과를 낳았다. 마자르 새빛회계법인 내 전문 회계사(한국 에서 수요가 매우 많은 직업)의 이직률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2019년 고용노동부 ‘청년 친화 강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코로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었고 또한 이 위기를 겪으며 우리가 전면 재택근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개개인은 점점 더 독립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어가고 있는데 전면 재택근무는 중간 관리자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동료들과 함께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들도 앗아갈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위기 속에 불안을 느끼고 쉽게 만족하지 않는 세대들을 안심 시키면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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