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레 아페르 109호]『한국에서 정의가 걸어온 길』저자, 크리스토프 뒤베르(Christophe Duvert) 인터뷰
인터뷰 오리안 르메르(Oriane Lemaire)
『한국에서 정의가 걸어온 길』 (Les Voies de la Justice en Corée du Sud)이 프랑스의 아틀리에데까이에(l’Atelier des Cahiers) 출판사를 통해 2021년 3월 출간된다. 이를 맞이하여 현재 숭실대 국제법무학과에 재직 중인 저자 크리스토프 뒤베르(Christophe Duvert) 교수를 꼬레 아페르에서 만나보았다.
Q.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12년 개인적으로 아주 충격적인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정치철학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번역서가 한국에 출간되어 큰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출판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온 이 현상은 한국인들이 정의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저는 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쓴 책은 저에게 있어서 제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학문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성찰해온 결과물입니다.
책의 주제는 거창하지만 간단합니다.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민감하면서도 아주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의가 한국인들의 일상 생활이나 갈등 해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학문적 접근을 시도해봤죠. 한국어로 된 고전이나 오래된 자료를 통해 법철학적 관점에서 연구했고, 정의의 개념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이해하기 위해 역사 자료도 찾아봤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들, 특히 공공 사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정의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보다 동시대적이고 사회학적인 차원의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이 마지막 작업을 위해 수많은 전문가와 청년들을 인터뷰했는데, 청년들은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존중과 조화와 같은 보다 오래된 가치들에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라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장조사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했죠. 이번 작업은 이 분야에서 프랑스어로 출간된 첫 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Q. 교수님께서는 사회과학과 법학을 동시에 적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의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이 다학문적인 접근은 시민과 정의의 관계를 어떤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나요?
사회는 갈등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세력 관계와 갈등 조정이 한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철학적 개념에서의 정의, 제도적 해석 속에서의 정의, 일상생활 속에서 정의까지, 정의는 서로 상충할 수 있는 다양한 규범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의의 개념은 예컨대 평등주의와 같은 민주주의적 근대성과 연결된 여러 규범으로부터, 또는 법과 규칙의 존중과 같은 다양한 가치로부터 영향을 받은 주장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의 정의란 대체로 유교에서 영향을 받은 문화적 유산을 담고 있는데, 유교는 조금 다른 가치들을 추구하며, 귀감이나 공평을 중시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그럼에도 제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현세가 존재하는 그대로의 법칙, 그 본질적 불평등성이 유교관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교관은 사회 안에서의 역할들을 정립하고 유교적 공정함이라 불리는 정의와 불의 간의 질서를 규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사법 절차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일상생활만큼이나 소송도 빠르게 처리됩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소송 절차가 몇 달이면 끝나죠. 한국에서 법정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법원의 기능에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가능한 한 합의를 통한 해결을 모색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법대로 하려 하지 않고 대립하는 쌍방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Q.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빠른 발전 속도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2019년 이후로 문재인 정부는 법조계, 특히 검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경찰은 수사를 개시하고 종결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지휘하에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복종 관계가 아닌 협조를 바탕으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에 중점을 둡니다. 개혁의 또 다른 중점은 프랑스의 국가금융검찰청과 유사한 기관인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는 데 있습니다. 이 조직은 고위공직자의 범죄 수사를 담당하며 부정부패를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국 법조계는 오래전부터 초엘리트 집단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출세는 보장됩니다. 요직을 맡거나 정계에 진출하는 거죠. 정부가 10년 전부터 법조계로 진출하는 경로를 다양화하기 위해 힘써오고 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의가 걸어온 길』에서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점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가치판단에서 벗어나, 엄밀한 문헌 고증을 통해 그리고 일반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