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꼬레 아페르 108호] 코로나19 : 생활 공간의 재정립
코로나19 위기로 우리는 가정이든 직장이든 생활 공간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우리는 생활 공간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았으나 이번 기회로 지금의 생활 공간이 더이상 일과 일상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외부 공간이나 집 에서 일하는 방식이 하이브리드화 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그 동안 분리되었던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같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재택 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작업 공간과 가정 사이에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로 인해 작업 공간의 재정립이 필요해 진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직원들이 ‘사무실’이라는 개념에 다양한 변 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불필요한 이동 감소(‘Zoom 화상회의 앱과 같은 온라인 활동), 여유와 일의 효율성, 심리적 안정 증가, 유대, 집단 지성 및 창의성을 장려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 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옆에 같이 있어야’ 직원들의 자발성이 향상 되고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용이하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따 라서 위생 수칙을 지키면서 공동 작업 공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공간을 가리켜 ‘허브와 클럽 (Hubs and Clubs)’이라고 부른다. ‘허브’는 사내의 활력이 만나는 곳이고 ‘클럽’은 공동 작업 공간처럼 회 사 조직의 가치를 사회화하고 공유하기 위한 곳이다. 이번 코로나19 에 따른 직접적인 교류 감소로 회사에서 웹 스튜디오와 같이 화상 회 의를 위한 적합한 장소가 개발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연결성으로 직원 들의 심리적 안정감 증가와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줄 수 있는 조 용한 공간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 로 공용 공간의 관리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직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고 재택근무와 사무실에서의 근무를 번갈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 이로 인해 사무실에는 사람이 더 적어지고 직원 한 명당 확보하게 되는 공간 크기(m²)가 더 넓어질 것이다. 또한, 매일 저녁마다 직원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플렉스 오피스(Flex Office)’가 활 성화될 것이다.
1980년대에 고용주는 컨설턴트, 방문객, 인턴 등을 수용하기 위해 1 인당 18m²의 작업 공간과 100명의 직원을 위한 110개의 작업 공간을 계획했다. 2019년 말이 되면 그 비율은 직원 100명당 11m²와 80개의 작업공간으로 떨어진다. 재택 근무와 코로나의 경험으로 이 비율은 50~60개의 작업 공간으로 더 낮아질 것이다. 또한,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회사들은 직원 1인당 여유 공간(m²)을 더 넓힐 것이다. 그러 나 이를 위해서는 ‘공간 통합’이 필요하다.
공간을 통합시키거나 ‘호텔링’ 기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2000년대에 서울에서 호텔링 시험 사업이 이루어졌다. 직원 6백 명 이 넘는 대규모 컨설팅 회사가 호텔링 방식으로 사무실을 재정비한 것이다. 당시 이 회사는 외근을 나가는 직원들의 업무 성격을 고려해 지정된 책상을 이용하지 않고, 공용 책상을 예약해서 사용할 수 있도 록 하여 공간을 최적화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방식은 더욱 보편화되었고 더 많이 수용되고 있 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직원이 아니라 외근이 잦은 특정 부서와 관 계된 부분이다. 이와 같은 호텔링 시스템으로 공간이 최대 30% 혹은 40%까지 축소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서 울에서 나타나는 평균 공실률 10%가 그 예다. 도심 일부 지역에서는 공실률이 18%에 가까워 사무실 건물이 주거 공간인 ‘오피스텔’로 다 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 공간 설계 변화는 우리가 더 이상 사무실에서만 인간관 계를 맺지 않는다는 사회적 변화와 관련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로 인해 더 욱 부각된 ‘터치리스’ 및 ‘데이터로드’의 개발과 같은 기술에서도 나타 난다. 음성 인식 도구, 점점 디지털화되는 공간과 함께 고용주는 전염 병의 위험을 예방하고자 작업 방식을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많 은 디지털 감지기가 공간을 설정해 공기 순환을 촉진하고 공간의 밀 도를 제어하며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 해 새로운 건강 및 안전 표준이 등장할 것이다. 현재 ISO 45001 ‘직업 보건 및 안전(OH&S)’은 직장 내 직원 보호 관리를 위한 유일한 표준이다. 이러한 표준은 코로나19와 같이 전염병 사태가 반복될 경우 친 환경 건축물 국제 표준(LEED)처럼 지속적으로 인증 기준이 변동될 수 있다.
직장이 변화하면 거주지도 변화해 균형을 이룬다. 직장과 가정은 서 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은 바이러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처럼 자발 적 혹은 비자발적 격리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과거와는 다른 목적 으로 집에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집이 생활 장소이자 소비 장소로써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실제로 격리 기간 동안 홈쇼핑이나 온라인 주문 대부분이 집에서 이 루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집 자체도 소비 활동의 공간이 될 수 있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몇 달 동안 가구, 장식 용품, 웰빙 용품, 레저 및 가전 제품의 구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서 이케아와 한샘의 한국 매출은 30% 증가했다. 가장 잘 팔리는 가구 는 기존의 4인용 식탁이 아닌 6인용 식탁이다. 그 동안 식탁이 식사하 는 공간이었다면, 이번 코로나19로 식사와 동시에 일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다기능 공간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이나 아파트는 예전보다 훨씬 다용도 공간이 되어 새로 운 작업 공간과 피트니스 공간(마사지 의자, 사우나), VR 비디오 게임, 식물이 심어진 테라스, 발코니 등 여가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크 기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더욱 포괄적이고 안락한 거주 공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가정 자동화 서비스 및 IoT 장비의 성장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술은 우리의 건강, 항균 제어, 공기 여과 시스템 을 점차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생활 공간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그 동안 생활 공 간은 너무 오랫동안 부동산의 관점이나 토지 최적화 관점으로 바라보 기만 했을 뿐, 정작 삶의 균형에 필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생 활 공간은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의 중요성도 간과해서 는 안될 것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고 여기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운다면 환 경을 재검토 할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건축 가는 이러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건축가 직업 의 본질이며 건축가가 져야 하는 고귀하고 무거운 책임이다.